이애리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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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영덕대게 조회 3회 작성일 2022-09-26 05:40: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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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가희 이애리수 - 강남제비, 고요한 장안, 황성의 跡, 라인강, 여창, 방랑가, 부활, 꽃각시 설움, 메리의 노래, 오동나무, 실연, 신 아리랑 등 28곡

[가사자막] 1910년생인 이애리수는 열 살 이전에 배우로 출발해 활동하면서,
1928년부터 무대에서 막간가수로도 활동하였지요.
그렇게 무대에서 가끔씩 노래를 부르다가 1931년에 가수로 정식데뷔,
1932년에 '황성의 적'을 레코드로 취입해 세기의 스타가 되었습니다... 만,
요란한 사랑을 불태우다가 우여곡절 끝에 1934년 결혼하면서 아예 은퇴를
하고선 평생 대중 앞에 나타나질 않고 평범한 주부로만 살았던 조금
신비스럽기까지 한 여성입니다. 하도 숨어서만 살았기에 모든 이들이
1980년대부턴 사망 했으리라 여겼는데, 뜻밖에도 2008년 경기도 한
요양원에 있는게 밝혀져 세상이 떠들썩 했었지요.
그런 후 몇달 후에 눈을 감았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70년 이상을 어찌 그렇게도 아무도 모르게 살았는지?!!!
심지어는 그녀의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서야 자신의 어머니가 왕년의
톱스타였다는걸 알았다니 허어 참, 생각할수록 감탄스럽습니다.
4년여간 부른 노래들이 한 50곡 남짓 된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곡은 아마도 제가 올리는 이 정도일 듯 싶습니다.
아무튼 초창기 가요계에선 큰 위치를 차지한 가수임엔 틀림 없는 분입니다.

00:00 01. 강남제비 - 김서정 작사작곡 1931년
03:24 02. 고요한 장안 - 이현경(이기세) 사 / 전수린 곡 1932
06:42 03. あだなさけ(원망스러운 정) - 2번 고요한 장안과 동일곡
09:53 04. 까페의 노래 - 작사 미상 / 나카야마 작곡 1919년
12:41 05. 황성(荒城)의 적(跡) 왕 평 작사 전수린 작곡 1932
15:34 06. 동백꽃 1932년.고범 작사.전수린 작곡
18:37 07. 라인강(江) 1931년 1월 / 작가 미상
21:44 08. 여창(旅窓) 1931년
24:18 09. 눈물에 흐린 거울. 이고범. 이서구.작사. 전수린.작곡.1933년
27:17 10. 꽃각시 설움. 이청강 작사. 전수린 작곡 1934/4 /마지막 작품
30:28 11. 방랑가 1931 - 강석연의 노래와 같은 곡인데 가사가 좀 다름
33:53 12. 버리지 말아요 / 이고범 작사, 전수린 작곡(1933)
36:48 13. 베니스의 노래 / 이규송 사, 작곡 미상(1931)
40:10 14. 메리의 노래 (1931년 1월)/ 데뷔곡
43:46 15. 부활. 미상 작사.곡.1931년
47:03 16. 순정 - 유백추 작사/전수린 작곡/1933년 6월2일
50:04 17. 스러진 젊은 꿈, 이광수(李光洙)작사, 전수린(全壽麟)작곡 1932
52:57 18. 애련愛戀 - 유백추 작사/전수린 작곡 1933년
56:06 19. 애수의 사빈沙濱 1933년 6월 유백추 작사/전수린 작곡 빅타
59:23 20. 오동꽃 - 1933년 6월 李春園(본명;李光洙)作詩/全壽麟作曲
1:02:39 21. 오동나무 (2010) - 강석연의 노래와 같은 곡, 가사가 좀 다름
1:05:51 22. 이국의 하늘 - 황성의(왕평) 작사 / 전수린 작곡 1932년 4월
1:08:51 23. 님 그리워 타는 가슴 - 왕 평(王平)/전수린(全壽麟) 1932년 4월
1:12:07 24. 늴늬리야 - 이애리수,전수린 노래
1:15:07 25. 모보모가(만요) - 박병훈 작사. 곡 미상/ 전경희 이애리수 노래
1:18:18 26. 실연失戀 - 1931년 8월 / 작가 미상
1:21:28 27. 신 아리랑 - 이서구 작사 문예부 작곡 1932/04
1:24:12 28. 유랑의 노래 - 김서정 작사작곡. 1931년 9월
가요황제 남인수와 남인영 : 공연히 욕심을 내어 제게 있는 모든 음을 다 올렸는데 좀 후회스럽습니다.
괜찮은 곡 한 열 곡만 골라 올렸더라면 싶은 마음이 드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성 있는 분이라 기록의 의미로 올렸다 생각 하렵니다.
이순화 : 귀한 곡들을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듣는내내 웬지 모르게
눈물이 나네요
산전수전 : 아주 음질좋쿠요, 지금도이 음반을간직하고계시다니 신기함니다 .덕분에귀한 노래잘들었읍니다,
운용 정 : 이애리수 선생의 노래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한번 느낌니다
thunder bird : 잘들엇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성옛터 - 이애리수 (1932)

황성옛터/황성의적 (1932)
노래 : 이애리수 (1910-2009), 작곡 : 전수린, 작사 : 왕평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 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 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어 있노라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아 한 없는 이 설움을 가슴 속 깊이 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 터야 잘 있거라

(퍼온글)
이애리수:

경기도 개성 출신인 이애리수의 본명은 이음전. '애리수'라는 예명은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다. 이애리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0세 무렵부터 배우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배우로 활약하면서 막간 가수로도 활동하던 이애리수는 소박한 창법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8세때 나라 잃은 슬픔을 표현한 '황성옛터'로 국민가수로 등극한다.

왕평이 작사하고 전수린이 작곡한 '황성옛터'는 고려 옛 궁궐인 개성 만월대의 쇠락한 모습을 노래해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랠 길 없던 국민들의 마음을 적셨다. 특히 '황성옛터'는 최초로 한국인이 작사•작곡한 대중가요로 평가받기도 한다.

1931년 '메리의 노래', '라인강' 등의 노래를 담은 음반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한 이애리수는 다음해 '황성의 적'이라는 이름의 음반을 발표했고, 이 음반은 5만장이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5만장은 현재 기준으로 500만장에 육박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노래를 통해 나라를 잃은 슬픔을 상기할까 걱정된 일본 경찰이 이 음반을 발매금지 시켰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애리수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이애리수는 같은 해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 학생이던 배동필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지만, 배동필씨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딴따라' 취급 받던 가수와 엘리트였던 대학생의 현격한 신분 차이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결국 이승에서 못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 이루자며 독약을 먹고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우여곡절 끝에 구출된 이애리수는 자신의 처연한 심정을 담은 노래 '버리지 말아 주세요'를 부르고, 그의 애처로운 노래를 들은 배씨의 부모는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한다. 가수 출신임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것이 결혼 승낙의 조건이었다.

이애리수는 결혼 이후 2남 7녀를 낳아 기르면서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살아왔다. 맏아들조차 어머니가 '황성옛터' 가수라는 사실을 대학생이 된 이후에야 알았을 정도였다. 무심코 노래를 읊조리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비록 이애리수는 70년 넘게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가 부른 '황성옛터'는 이후 수 많은 후배 가수들의 입에 올라 아직까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으로 꼽히고 있다.

은퇴한 뒤 소식이 끊어지며 한 때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오다가 2008년 일산의 한 요양원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2009년 3월 3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JH318 :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가 이 노래 불렀는데 ㅋㅋㅋ
Chang Thompson : 가사를 감미해보면 얼마나 살기고 힘들고 어려운 시대였는지 짐작이 가요. 잘 들었습니다.
눈부신햇살 : 일제 강점기에 인생은 흘러가고 꿈은 덧 없음을  노래로 안타까움을 표현한 슬픈곡이네요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헤르메스 IN : 이애리수 님의 1932년발매된<황성의 적>은 우리나라의 유행가 시대를 열어준 곡이라는 평이 있네요. 빅타음반회사의 문예부장 이기세라는 분이 이애리수라는 가수를 발탁한 이유는 목소리가 신비하고 조선의 정서를 담기에 적합해서라고 하네요. 약 90년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신비하고 대단한 가창력을 가지신 분임에 틀림없는 듯 합니다. 트롯의 역사에서 대단한 분을 보게되어 영광이고, 이애리수님의 생전사진 감사하게 잘봤습니다.
seung na : 귀한노래 듣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황성의 적

Provided to YouTube by OGAM

황성의 적 · Various Artists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막간 가수들

℗ 오감엔터테인먼트

Released on: 2002-11-20

Auto-generated by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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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리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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